[70. 9] 그리스도인의 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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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어려운 일이 올 때에 참된 성도의 애원을 통하여 하나님은 난제를 해결시켜 주는 것이다.
이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애원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순교적인 생활을 말하게 된다 (계6:9~11)
(계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우리는 기독교가 협상적인 노선을 걷게 되고 북방의 붉은 세력은 날마다 강해가고 교회 안에 사랑이 식어져 도저히 위로를 받는 것보다도 상처를 받게 되고 점점 교회 안에 분쟁만 일어나고 말씀은 새로운 것이 없고 도저히 예배의 신령한 은혜가 없게 될 때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몸부림치며 목숨을 내걸고 나서야 되겠다는 마음이 자동적으로 생기게 될 것이다. 만일 이때에 이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죽은 영이 되었던지 그렇지 않으면 깊이 잠이 들어서 분별을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믿음의 양심이 살아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이때에 각자가 목숨을 바쳐서 투쟁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장래는 큰 위기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언제나 무서운 환난과 재앙이 올 시기에는 구약 말기에도 참된 선지가 목숨을 바쳐 싸워서 증거하게 되었고, 신약시대에 기독교가 극도로 부패될 때에 하나님의 종 되는 자들 중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일이 있으므로 교회는 다시 새로워지는 일이 있는 것이다. 만일 오늘에 기독 신자들이 순교적인 사상을 포기하고 협상적인 노선을 취한다는 것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탄식하며 슬퍼할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천천만 천사도 이 땅에서 순교자의 동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순교자들까지도 호소하고 있다.
땅에서 굶주린 양 떼들은 아우성치는 탄식이 있게 되는 현실이라고 보게 된다. 때는 과연 왔다. 그리스도인이 슬피 울며 애원하는 호소가 있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이때이다. 이래도 저래도 큰일은 기독교에 닥쳐오게 된 것이다. 이 큰일이라는 것은 크게 싸움이 일어날 일이다. 성서를 비추어 볼 때에 이제 기독교 안에 큰 싸움은 역사적으로 없던 무서운 일이 닥쳐올 것이다. 이 싸움에 승리하면 영원한 평화요, 축복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순교자 동무가 되는 사람에게 권세를 주려고 살피고 있는 것이다. 이날까지에 담겨있던 순교자의 기도의 향은 애원하는 자에게 응답으로 올 것이니 해산의 수고를 다하여야 할 때가 왔으니 우리들은 요엘 2장과 같이 합심 단결하여 애원하는 호소가 있을 때에 여호와 응답할 것이다.
2. 쉬지 않는 생활 (사62:6~9)
(사62: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사62: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62:8)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식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너의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으로 마시지 않게 할 것인즉
(사62: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지금 이때는 참으로 애원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밤낮으로 쉬지 못하고 활동하게 된다. 무엇으로 보든지 때가 임박한 것을 알 때에 일초 일각인들 방심할 수 없고 할 일 많은 이때라는 것을 하나님 말씀에서 알게 될 때에 조금도 쉴 수는 없다.
이날까지의 기독교의 할 일이 많았지만 금일같이 여러 가지 모든 난제가 닥쳐와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할 자는 그리스도인이다. 역사상 지금같이 기독교인에게 어려운 난제가 많을 때는 없었던 것이다. 만일 지금 이때에 기독교인이 할 일 없이 어떤 오락이나 어떤 연락을 일삼고 쓸데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상, 양심을 잃어버린 자라고 본다.
이때에 할 말이 많고 갈 곳이 많고 싸울 일이 많고 깊이 기도해볼 일이 많고 정신을 차려서 자세히 보고 자세히 듣고 하여야 할 일이 많은 때다. 만일 이때에 쉬지 않고 일해도 그 힘을 하나님께 받지 않으면 도저히 기독교인으로서 신앙 생명을 보존할 수 없고 심지어 육의 생활까지라도 바로 살기가 어려운 난제가 닥쳐온다고 보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쉴 때도 있고 깰 때도 있다. 예를 든다면 하루 일하는 노동자가 낮에는 쉴 시간이 있지만 저물어가고 어두워갈 때에 쉰다는 것은 일꾼의 양심이 아니다. 그러므로 일꾼이라는 것은 아무리 쉬는 시간이 있다 해도 날이 저물어갈 때는 쉬지 않고 그날의 할 일은 해야만 되는 것이다. 주인이 노할 일은 시간이 다 되었는데 쉰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에 잠깐이라는 시기가 지나면 다시 일할 기회도 없고 일한 대로 갚아주실 주님이 나타날 때를 당하였다. 지금 이때는 쉬지 않고 애원하는 자라야 하늘로부터 오는 새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가장 역사적으로 급한 때는 금일이라고 본다. 중동의 바람집을 막았다고 쉴 때가 아니고 계7:1~3을 보면 땅이나 바다나 피해를 줄 권세가 있는 네 천사에게 다른 천사는 나타나서 해돋는 편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크게 외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게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하는 광경은 금일에 우리가 마땅히 일어나야 할 시기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쉬지 않고 애원하는 자가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지금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격동을 주어서 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지금 제일 어리석은 자는 할 일 없이 잠자는 자이다.
3. 여호와만 바라보는 자 (미7:5~8)
(미7:5)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찌어다
(미7: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미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미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찌어다 나는 엎드러질찌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찌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참으로 애원하는 자라면 사람에게 상처 받을 필요가 없고 하나님께만 애원하는 자가 될 때에 이것저것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난제가 닥쳐오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인 줄 알고 조금도 사람에게 치우치지 말고 용기 있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암7:1 이하와 같이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피해를 당치 않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아무 때든지 어려운 일이 올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애원하는 자에게 초인간적인 역사가 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사실이지만 이제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에게 오는 축복은 다함이 없는 축복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금 이때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눈물 흘려 호소하고 돌진의 걸음을 걸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아무리 바로 황제가 강퍅했지만 모세의 애원을 들어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시킨 것이다.
우리 극동 난제가 닥쳐온 현실에 동방 땅끝 작은 반도에 남은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이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애원하는 간곡한 호소가 있어야만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사41:17 이하를 보면 가련한 빈핍이 닥쳐온 사람들이 혀가 마를 딱한 사정을 만났지만 애원함을 들으시고 응답이 오므로 새 땅 축복이 올 것을 말했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일을 행하실 때는 반드시 당신의 백성의 애원을 들으시고 역사하시겠다고 미리 약속을 세우신 것이다(시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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